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각국으로 파급되면서,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 그 사이 엄청나게 오른 환율에도 불구하고 처한 상황으로 인해 해외여행을 강행하게 되었다. 나로선, 경제 위기로 인해 엄청나게 떨어져 버린 원화의 가치 때문에 하늘 높은줄 모르는 환율로 환전을 하게되었다. 덕분에 피부로 와닿는 물가로 유럽에서 생활을 했고, 하루하루 빈곤하게 살아왔지만 한국에서의 다시 조명한 영수증들은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

한국을 돌아와서 유럽의 여러나라도 경제위기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현지인이 아닌 나로서는 그들의 기존의 문화, 분위기, 뉴스, 신문 등의 피부로 와닿은 일은 체감치 못했다. 이미 유로로 환전한 이상 한국돈이 아닌 외국돈을 소비하는데 있어 이상한 점은 거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숙박업소를 가게 될때 들리는 이야기로서 간접적으로 체감했을 뿐이다. 올라버린 환율 탓에 한국인들의 발길이 뜸해졌다는 것과 요새 어려워서 힘들다는 단순한 입소문이 바로 그것이다.

평소에 티비를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일요일인 오늘 우연찮게 티비를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것저것 보고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던 중 우연치 않게 MBC의 2580을 보게 되었다. 오늘의 내용은 경제한파 속에 놓인 일용직 근로자들의 이야기 였다. 만화방을 전전하고, 첫차보다도 일찍 다니며, 직업소개소와 노동부도 다니는 그런 모습이었다. 한 일용직 근로자는 일찍 들어오라는 가족의 전화에도 불구하고 일찍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모습은 97년에 터진 IMF의 정리해고 이후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막중하다. 내가 가장이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보지만, 확신은 서지 않는다. 물론 절박해진 사람은 그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당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아직 그 느낌은 요원한건 사실이다. 과거 10여년전 공원의 벤치에 정장차림의 사람들이 신문과 빵과 우유를 들고 나타나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상당히 많은 바를 생각하게 되었다. 경제한파로 길거리로 나와있는 일용직 근로자가 27만여명이 된다는 소리와 함께..

우선, 엄청나가 얽혀버린 세계화의 현황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 시장을 상당히 신뢰했던 월가의 사람들은 과도한 욕심으로 그 신뢰를 실패로서 보답을 하고 그에 대한 파급효과는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사실 나는 금융의 규모는 정확하게 모른다. 단지 많다는 것 뿐. 하지만 미국에 투자한 금액이 적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의 위기가 곧 세계의 위기라는 인식은 단순히 투자 액수와 관계 없이 파급효과가 엄청나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무역 규모가 과거에는 1위를 기록하고 현재로선 3위로 밀려났지만, 그 액수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그들이 시장에서 사고파는 힘이 떨어질 수록 우리도 역시 그 영향을 받는 것이다. 지구촌으로 생각하면 그 거래가 단순히 우리나라뿐만 아닌 아시아, 유럽 등 수많은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정말 살떨리는 이야기다.

두번째, 지금의 경제 위기 과연 자력갱생할 수 있을까? 일단 나는 굉장히 호의적이다. IMF라든가 하던 국가의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우리는 항상 믿기지 않는 힘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개인주의의 서양에서는 상상키 어려운 일이다. 현재 논란은 많지만 지금 정부의 나름의 정책은 어떠한 형태로든 효과를 볼 것으로 생각한다. 과거 김대중정부때도 논란이 많았지만 해결이 되었고(후유증 등은 논외로 하자), 지금도 역시 논란은 많지만 소기의 성과는 달성할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에도 그에 대한 필요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많은 사람이 반대를 했지만 결국 건설을 착수했고, 지금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 나의 소결이다.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파급효과가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다른 국가보다 한발 더 앞서나가는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세번째, 공부에 대한 재조명이다. 우리나라는 유독 학력에 대한 논쟁이 많은 국가다. 집안의 재산인 소를 팔아서 대학을 보낼만큼 많은 국민들이 대졸을 원한다. 실제로 대졸자는 차고 넘치고, 쉽게 말해 고급인적 자원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의 간극에 숨어있는 대졸 미만자들은 이런 위기에 많이 노출되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방송의 중간엔 '별 다른 기술이 없는'이라는 내용이 나왔다. 가진 것은 오직 몸이라는 뜻일게다. 지식도 부족하고, 남다른 손재주도 없으며, 타인과 나를 차별화할 어떠한 툴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된다면 일을 함에 있어서도 사람의 이름으로서가 아닌 머리수로, 쉽게 대체가 가능한 인력이 될 수 있다. 나는 실제로 일용직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일하는 건설현장이 수년내로 자동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복이고, 단순한 작업이며 무엇보다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간이 지날 수록 일용직이 설자리는  더욱더 사라 질 것으로 믿는다. 그럴 수록 나와 타인간의 차별성을 무기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공부, 공부, 공부. 공부는 단지 종이에 글로 써진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고 듣는 것도 공부요,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재주를 연구하는 것도 공부다. 어릴적부터 관심이라곤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에만 열중하면,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점점 불편해 진다. 인생을 살면서 겪어야할 편안함과 불편함을 어떤 시기에 겪느냐는 결코 누군가가 해주지 않는다.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의 선택을 남에게 돌리기 좋아한다. 어려운 상황을 국가의 탓으로 돌리기 좋아한다. 어려운 집안사정을 부모탓을 하기도 한다. 어려운 인간관계를 상대방 탓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양보하고 그에 처한 위기를 좀더 건설적인 기회로 찾다보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기회로 다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은 불평등하다. 하지만 그 불평등 속에 갇혀서 투덜대기만 한다면 평생 그리고 나의 자식에게도 불평등 속에서 사는 방법만을 가르쳐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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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6 01:04 2009/02/16 01:04
Posted by huk1984

소비와 재산의 관계


세계적인 경제의 위기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제대책이 도마에 올랐다. 이런저런의 대책을 내놓는 가운데 소위 말하는 부자들을 위하는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한편에선 반대의 여론이 한편에선 찬성의 여론이 들끓으면서 우리사회는 또 다시 부자와 서민의 대결 구도로 치닫게 되었다.


한편으론 소모적인 논쟁이다. 부자인가 서민인가는 엄마인가 아빠인가와 비슷한 이야기 같다. 정책이란 것이 둘을 모두 만족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지향하는 바는 모두를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2008년 말의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혼돈의 피해자다. 외국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국내 경제는 경제 불안이 생길때마다 수 많은 자금과 투자가 빠져나가는 실정이다. 하루에도 증권시장은 몇번이고 문을 열고 닫는 경우가 생기고, 환율의 문제도 하루아침에 몇백원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실정이다.


경제의 시장 원칙은, 초과 이윤은 생산자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인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로 인해 궁극엔 소비자도 생산자도 정상적인 이득을 얻는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론과는 달리 현실에선 변동성 즉, 리스크라는 외부요인이 존재한다.


수 많은 돈을 들여 투자를 하는 경우 앞날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한다. 리스크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안정적인 시장이라면 투자에 대한 어느정도의 이윤과 손해를 예상할 수 있지만, 불안정이 큰 시장에선 어느 쪽으로도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를 꺼리게 된다.


변동성이 큰 시장에선 하루만에도 큰 돈을 벌 수 있다. 개장하자마자 서킷 브레이커, 사이드 카가 발동되고, 하루에도 몇번씩 큰 폭의 등락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상황일 수록 지갑을 열기 보단 지갑을 닫게 된다.


안정을 좋아하는 성향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동산 등의 유동자산보단 부동자산을 선호한다. 위험성이 크면서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주식을 부동산보다 꺼리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때문에 지금의 정부의 정책은 사실 어떠한 노력에도 쉽게 부흥되지 않을 것이다.


기반을 다지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당장의 호불호는 매우 소모적인 논쟁이다. 정부의 눈부신 정책에도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면 경제의 악순환으로 연결되기 쉽다. 정부의 빚은 결국 우리의 지갑과도 연결되고 그렇게 되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물론 추가적인 논쟁이 상존하지만, 미국은 실리콘 밸리의 부흥으로 경제의 부흥을 이뤄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역시 기초 인프라의 투자에 의한 경제 회복이 일조했다. 우리나라 역시 지금 당장의 변동성을 걱정하는 것 보단, 변동성 이후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생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경제의 자국인의 규모가 낮은 국가라고 생각한다. 주요 경제중심지의 빌딩은 상당수가 외국인 소유이고, 주식시장의 배당금액을 비롯한 주요 주식회사의 비율 역시 외국인들의 비율이 높다. 경제의 근간인 수출입도 GDP의 약 65%를 차지한다. 경제 변수가 내부적 요인보다 외부적인 요인이 강력한, 내부의 기반도 아직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한국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의 다툼보다 합의를 통한 국민적 합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툼의 끝은 상처뿐인 승리자이다.

18세기 바이마르의 유명한 작가인 괴테와 실러.

하루는 어떤 사람이 괴테에게 이렇게 물었다.

"괴테와 실러중 누가 더 위대한 작가입니까?"

그러자 괴테는 이렇게 대답했다.

"최고인 1명보다 누가 최고인지 모르는 2명이 더 낫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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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1 22:45 2008/11/21 22:45
Posted by huk1984

나는 해외에서 외국인들과 부딪히면서 그들을 경험해 보지 못하였다. 고작 해본 것이라고는 단기 여행. 잠깐 가서 외국인들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잘 알지도 못하는 그러한 경험만 해보았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때론 신문을 통해서 전해오는 외국의 모습은 나로하여금 항상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과연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우수성을 보이지만, 또 다른 이면에는 열등한 모습을 보이면서 항상 뒤쳐진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언제나 뉴스와 신문 등의 전달매체에는 선진국을 예로 들면이라는 인용구는 빠짐없이 등장하고, 항상 어느나라 어느나라 하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호기심으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한나라 사람들의 성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매우 흥미로웠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었고, 관련 서적 역시 많이 나와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과연 우리나라는 어떤 성향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좀더 정확한 사실을 알아가고 그 내용을 통해 앞으로의 세상을 보는데 더 나은 시각을 가지고 임하길 바라며 생각했다.


우리는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다. 체면은 어쩌면 예의와도 비슷한 개념이 될지도 모르겠다. 차이가 된다면, 예의는 상대방을 기분나쁘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체면은 나 스스로를 남보다 다소 우월하거나 최소한 열등해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선 이 둘이 거의 같은 것 같다. 어쨌든, 이러한 두가지 성향이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것 같다. 체면과 예의가 과연 옳고 그른가에 논의는 차치하고, 그러한 성향을 가진 우리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때론 매몰차게 내치는 냉정함을, 때론 얼굴도 모르고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배려하는 따뜻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향이 단순히 인간의 삶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정치와 경제의 영역까지 힘을 미치는 것 같다. 논의의 진행은 여러 갈래로 할 수 있지만, 나는 주로 경제적인 면으로 초점을 맞추고 싶다.

신문은 항상 비판의식을 지니고 산다. 그것이 신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신문을 읽는 사람들의 생각은 과연 어떠할까.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무비판적인 사고를 많이하는 것 같다. 무성히 퍼지는 소문 즉, 루머를 공공연하게 구전한다. 비록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이 있지만, 내 생각엔 루머는 때때로 정말 아닌 땐 굴뚝에도 새카만 연기를 내뿜는 것 같다. 교묘한 언어의 조작은 사람들의 감성을 이끌어 내고 삽시간에 전달시키는 기능을 내뿜어 내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에서 억압받았던 스트레스와 금기사항에 대한 도덕률 적용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그 탈출구를 찾는다. 때문에 더욱더 그러한 이야기들은 빨리 퍼지고, 커진다. 그러한 소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매카니즘을 통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나 역시 루머를 접하고 즐기고 전달하는 한 개체로서 활동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갖는다.

현실에선,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를 오간다. 체면이라는 것은 선진국으로 도약하길 바라고, 예의라는 것은 국민들에게 일정한 수준의 삶을 제공하는 것이다. 경제가 그렇듯이 어느 한쪽만 치우치면 부작용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과거 60년대의 경제개발계획을 통해서 절실히 느끼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복지에만 치우친다면, 독일이나 벨기에의 사람들 처럼 국가내의 대립이 상존하고 때론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불협화음의 여지를 남겨둔다. 기업연합이나 노조연합은 항상 싸운다. 지겹도록 싸운다. 서로 '경영환경이 어렵다',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를 외치며 임금 동결,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선진국의 반열을 올라가기 위해선 분명 누군가가 손해인 것 처럼 보이는 양보를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서 만큼은 예의보단 체면을 더 차리고 싶어한다.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향이라면 성향일까. 아니면 국가라면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일일까. 난 솔직히 이러한 대립각이라든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우는 이러한 일의 발생에 대해 특별한 찬반의견은 갖고 있지 않다. 다만, 현실에일어난 그 현상에 대해 사회적인 찬반의견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어짜피 현재의 위치에 있을 바에야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지 못할까하는 생각을 한다. 분명 어느 한쪽에서 양보한다는 것은 결국 손해로 귀결 될 것같다. 승패로서 체면을 차리기 때문이다. 체면을 차리는 순간 마음 한쪽엔 우월과 열등의 계급이 나뉘어 진다. 기업가가 이겼다면 노동자는 기업가에 비해 손해를 감수하고,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현상 자체에 대한 생각은 나 역시 이해한다. 그러나 눈을 조금 더 돌려서, 서로에 대한 이해 깊어진다면 정말로 지속가능한 발전가능한 보다 건설적인 협력이 상호 윈-윈하는 전략이 될 것은 알 것이다.

여기 게임이론이 있다. 만약 성공하는데 있어, 웃으며 하는 것과 화내며 하는 것이 있다. 실패역시 마찬가지이다. 성공과 실패의 확률이 반반이라고 따졌을때, 우리는 어떠한 방법이 더 좋은 방법일지 알 수 있다. 비록 성공의 확률이 10%라고 하더라고 상호 웃으면서 일을 한다면 실패도 성공을 향한 한 발걸음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성향은 컨트롤 할 수 없다. 다만, 서로 이해가 깊어진다면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다 쉽게 얻을 수 있고, 보다 화내지 않고 즐겁게 보낼 수 있다. 같은 일을 함에 있어 같은 결과를 내는데 왜 굳이 열을 내야만 할까? 길을 묻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인상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지나가는 것은 둘다 똑같은 결과지만 후자는 묻는 사람과 알려주는 사람 모두 기분이 나쁠 것이고, 전자는 둘 모두가 최소한 예의를 차리면서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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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6 01:00 2008/10/16 01:00
Posted by huk1984
국가는 크게 2가지 방법으로 통치할 수 있다. 첫번째는 소수의 집단이 토론과 회의를 통해 국가를 이끌어 가는 것이고, 둘째는 강력한 지도자가 국가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의 장단점이 있어서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그 국가와 시국에 따라 맞춰가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제다. 민주주의의 도입으로 과거 역사의 군주와는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국가가 운영되고 있지만, 그 애초의 틀은 과거의 모습과 비슷하다.

나는 대통령제를 찬성한다. 비록 단점이 수두룩 하고 때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성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국회에서 이끌어 간다고 생각한다면, 대통령제의 상황보다는 더 좋은 상황은 올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매일 국회 개점 휴업을 선언하고 서로의 타협점 보단 서로의 고집을 관철시키고 누구의 고집이 더 센가를 내기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 과연 이들에게 국가의 주도권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제에 드는 안타까운 점이 하나있다. 이 제도에선 한사람의 능력에 대해 어쩌면 운에 맡겨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에 되는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 없는 것이다. 그 당사자는 자신의 신념과 소신대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겠지만, 그의 본래의 의도는 결과적으로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지금 처럼 말이다.

"그의 시작은 선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즉, 결과는 아니지만, 시작은 긍정을 위해 나타났다는 의미다. 그 만큼 더욱더 자신의 선의를 검토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는 단지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받으려는 권리는 잠시 거두어 들여야 한다. 일거수 일투족이 신뢰와 연결되며, 자신감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편협한 시각과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은 당연히 거부감과 반대를 불러일으킨다. 거부감, 반대라는 것은 감정이다. 우선 시작은 감정적인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감정이 모이고 쌓이면 이성이 되고 결국 논리적으로도 비뚤어진 사회의 움직임이 생긴다. 비뚤어진다는 것의 의미는 감정 당사자가 아닌 국가 정책이나 만족도에 대한 애초의 목표에서의 벗어남을 의미한다.

나도 한 인간으로서 많은 욕심이 있다. 졸리고, 배고프고, 갖고 싶고, 원하는 바를 하고 싶다. 하지만 때론 그러한 것을 뒤로 하고 참는 것 역시 의미있는 일이란 것을 알았다. 10만원으로 사람의 마음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앞으로의 생활의 어려움을 참고 쓰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혹시나 오해할까봐 사족하자면, 10만원을 직접적으로 줘서 즉, 돈을 주고 내 편인척 만드는 것이 아님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상황에 따라 500원 혹은 1000원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경우는 많이 있다.)

갈등이 상존하고, 반목이 팽배한 곳에는 발전이 없다. 당연한 이치다. 그 경우엔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달려드는 하이에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서로 헐뜯고 물어 뜯는 것의 결과는 피흘림과 상처뿐이다. 아무도 승리하지 않고 아무도 패배하지 않는다. 그저 상처만 남을 뿐이다. 무엇이 현명할까. 양보는 당장엔 패배처럼 보인다. 한발자국의 물러섬은 나의 자존심에 씻지 못할 오명을 남겨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좀더 냉정하게 생각하자. 웃으면서 갈등을 풀면 좀더 스트레스 없이 해결 할 수 있다. 서로 미안해하며 왜인지 모르는 뿌듯함으로 바꿀 수 있다.

국가는 전쟁터가 아니다. 국가는 톱니바퀴가 원할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윤활유다. 모두가 윤활유의 역할을 기대하는데 그 윤활유가 되려 톱니바퀴에 걸리는 쇳덩이처럼 활동하게 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원할한 운영이 아니라 모두가 정지된 상처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였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하는 태도보다는 내가 양보하면 상대방에게 양보를 요구하고 이해를 구하는 문화와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 먼저 양보하는 사람은 빛나는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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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6 01:03 2008/09/06 01:03
Posted by huk1984
어릴때부터 힘들게 고생하는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에게, TV를 보며 입으로 축구하시는 많은 분들을 보면서 많은 부분을 실망했지. 그 어릴때의 습관이 아직 남아있어서, 나도 왈가왈부하는건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 좀 아쉬운 부분이 많아.

내가 축구를 정말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전술을 감독처럼 볼줄 아는 것도 아니고 이건 정말 부끄럽지만 K리그의 유명선수들도 잘 몰라. 국가대표나 올림픽대표 같이 '대표'를 달지 않으면 잘 모르겠어. 내가 2003년부터 축구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땐 프리미어 영국리그를 봤지. 그렇게 1,2년을 보다가 어느날 일요일에 집에 앉아서 K리그를 보는데 정말 지루하더라구.

요새 계속 국가대표팀한테 붉어지는 문제가 뭐냐면, 골게터의 부재야. 맨날 골을 못넣고 있어. 아니면 기껏 골을 넣으면 쉽게 실점을 허락하는 거지. 나도 비록 K리그는 잘 안보지만, 대표팀 경기는 늘 챙겨보는데 보는 팬이나 국민된 입장에서 답답한게 한두번이 아니야. 프리미어랑 자꾸 비교를 하게 되서 미안한데, 내 생각엔 이탈리아랑 스페인도 마찬가지라고 봐. 세리에랑 라리가도 가끔 보는데 프리미어랑 스타일이 다르지만 경기는 재미있거든.

전술이 정확히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해설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요리그는 전술에 맞춰 대응하는 감독들과 선수들의 움직임이 있는데, 우린 그게 우선 부족한거 같아. 상대방이 우리의 주요 루트를 잡고 있으면 그에 대응하는 다른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계속 부지기수로 뚫는거야. 안되는데 그게. 감독이 지시를 하고 선수들이 못받아들이는 것인지. 하지만 2002 월드컵때는 결과를 떠나서도 난 재미있게 봤어. 예선전 할때도 친구들이랑 좀 다르다고 느꼈으니까. 그때만큼 재밌었던 경기가 없었던 것 같아.

경기중에 프로선수로서 패스미스가 너무나도 많은 것도 문제야. 서로 볼돌리다가 공뺏기는 경우는 요샌 거의 못봤지만, 서로 긴 패스를 주고 받을때 혹은 짧은 패스를 주고 받을때도 서로 호흡이 안맞아서 혹은 트래핑 문제로 공 못받고 라인 아웃시키고 어이없이 공 내주고 하면, 보는 입장에서 참 답답하지.

경기내내 지루한 가장 큰 이유는 시원한 슈팅이 없다는 것. 전에 이런 기사가 난 적이 있어. 이탈리아 유소년팀 분석관인가 하는 사람이 한 이야긴데, 나이분포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 했어. 그 사람 말이 우리나라 (올림픽)대표팀 선수들의 연령층이 과감한 모험보다는 안정적인 다시 말해서 확실한 기회에만 슈팅을 날리려는 경향이 있다고. 그 사람이 맞는 말은 한지 안한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항상 보면 중원이나 혹은 골에어리어 양 모서리 같이 한번 시도해볼만한 곳에서 슈팅을 뻥뻥 날리는게 거의 없는거 같아서 좀 지루해. 시청자들은 물론 이겨야 하는 사명도 있지만, 유소년팀에 있던 단신의 칸나바로를 발탁한 그런 과감한 모험은 정말 어려운가?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세컨찬스가 없다는 거야. 항상 기회가 있는 곳에 선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혼자만 움직이는 것 같아. 그러니까 행여나 키퍼랑 1:1인데 타이밍 놓쳐서 공 못차는 경우가 있잖아. 그럼 그 짧은 시간에 수비가 들어오는데 우리나라 선수는 못들어온다 이거야. 그러니까 항상 혼자하지. 들어갈리가 있나. 그렇게 좋은 기회를 어이없이 날리기도 하고 패스날리고 시원함도 없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대표팀에 기대하는 바가 적어지지.

이에 따라서 나 역시 외국인 감독이 맡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물론 국내 감독 좋지. 하지만 시야에 있어서 외국인 감독은 우리랑은 차원이 다른 것 같아. 대표팀만 봐도 항상 예상한 선수들의 대표팀 승선. 비슷한 전술이잖아. 히딩크가 박지성을 찾아낸 것 처럼, 때론 모험도 하고 과감한 전술도 써보고 해야하는데 항상 뒤져. 맨날 쓰리백 쓰다가도 결국엔 아드보카트가 포백 만들어 줬잖아. 세계는 죄다 포백으로 가는데 말이야.

물론 전술이랑 선수기용은 남이 한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가는 법은 없어. 하지만, 시도도 해보고 변화도 하면서 완성하는거야.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구. TV 보면서 욕하고 소리지르고 하는건 싫지만, 나도 맨날 챙겨보고 응원하는 입장에서 답답한건 어쩔 수 없어서 이렇게 끄적끄적 해봐. 전술이 절대적인게 없는 것처럼 나도 그냥 머리에 생기는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거잖아? 앞으로 멋지게 도약해서 발전했으면 좋겠어. 한국 축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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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4 02:26 2008/08/14 02:26
Posted by huk1984

남현희

남현희 펜싱선수

출생 1981년 9월 29일 (서울특별시)

소속 서울특별시청

학력 한국체육대학교 (학사)

신체 155cm, 체중 45 kg

경력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펜싱 국가대표

수상 2008년 제29회 베이징올림픽 펜싱 여자 플뢰레 은메달

   

왕기춘

왕기춘 유도선수

출생 1988년 9월 13일 (전라북도)

소속 용인대학교

학력 용인대학교

신체 172cm, 체중 76 kg

경력 2007년 6월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남자 74kg급 국가대표

수상 2008년 제29회 베이징올림픽 유도 남자 73kg급 은메달

8월 11일 열린 3가지 결승전 중에서 2가지 결승전에 주목했다.

첫번째로, 2005년 성형 파문으로 한동안 우리들에게 알려졌던 남현희 선수다.
내가 이선수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수영의 박태환 처럼 우리에겐 불모지로 여겨진 펜싱이라는 종목에서 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펜싱을 전혀 모르는 나로서도 경기를 보는 내내 선수의 헬멧에 들어오는 불빛을 보며 환호와 아쉬움을 나타냈고, 결승전에서의 마지막 1분 동안은 정말 대단한 긴장을 안겨주었다.

두번째로, 이원희를 꺾은 대한민국 유도 기대주 왕기춘 선수다.
우선 어떻게 보면 촌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어, 나에게 더욱 각인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촌스럽지 않고 매트위를 이끌어 나가는 세련미를 갖고 있었다. 더군다나 8강전을 하며 허리를 다쳐 아픈 몸을 이끌며 결승에 임하는 자세는 그 자신에게도 상당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은메달 100개 따봐야 금메달 1개 딴 나라보다 순위 쳐진다"
그렇기 때문에 은메달과 동메달은 딴 선수들은 되려 국민들에게 송구한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풍조가 안타까웠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금메달과 은메달을 떠나서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이 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그들을 보며 환호하고 응원하는 그 자체를 즐기고 있다. 물론 결과가 좋으면 더욱 좋지만, 진정한 올림픽 정신은 선수들 뿐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금메달의 기쁨을 안겨주는 것 아닐까.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노점상에서도,
우리나라의 경제를 책임지는 기업에서도,
대한민국의 국민과 함께 숨쉬는 공무원들도,
우리 모두가 올림픽에서 땀흘리고 있는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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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2 00:08 2008/08/12 00:08
Posted by huk1984
 
 
1999년 7월 중국, 진선인(眞, 善, 忍)을 수련하는 수천만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잔혹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들 선량한 사람들에 대한 장쩌민의 학살 정책은 다음과 같다.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육체적으로 소멸한다.」
「때려 죽여도 자살로 친다.」
「신원을 조사하지 말고 즉시 화장하라」

또 100가지 이상의 지옥과 같은 고문이 있다.

전기쇼크, 불 고문, 음식물 강제 주입, 사인상(死人床), 성 고문, 압박침대, 물감옥, 혹독한 구타, 동상(凍傷)과 폭염노출,
호랑이 의자, 약물주입, 대나무 꼬챙이, 강제 낙태, 차에 매달고 달리기, 노예노동, 기타 학대 등...

감금된 파룬궁 수련생들은 거의 다 이러한 고문을 겪었으며 특히 파룬궁에 대한 신념의 포기하지 않는 수련생에게도 예외없이 가해졌다.
가혹한 고문들은 고희에 가까운 노인, 꽃다운 나이의 소녀, 젖먹이는 젊은 엄마, 임산부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전기쇼크
 



해외 파룬궁 수련생이 중국 수련생들이 전기쇼크 고문을 받고 있는 상황을 시연하고 있다. (2004년 美, 시카고)

「전기 쇼크」는 경찰, 교도관들이 파룬궁 수련생들을 박해할 때 가장 흔히 사용하는 고문 방법이다. 30만 볼트에 달하는 전기봉으로 수련생의 민감한 부위(예: 입, 귀, 발바닥, 손바닥, 성기, 유두 등)에 전기 쇼크를 가하며 심지어 전기봉 몇 개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 연속 7시간 전기 쇼크를 받아 얼굴이 훼손된 가오룽룽(아래 사진)
가오룽룽(高蓉蓉, 36), 랴오닝성 선양시 루쉰(魯迅)미술대학 재무과 직원. 연속 7시간의 전기 쇼크를 받아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그녀는 현재 생명이 위급한 상태.
  ▶불 고문
 


이 고문 방법은 극히 악독하고 잔인하다. 경찰의 담뱃불에 많은 수련생들은 얼굴이 타서 시커먼 흉터를 남겼다.
일부 경찰들은 젊은 女수련생들의 얼굴을 불로 지져 그녀들의 정신과 육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런 고문에는 또 라이터로 수련생의 얼굴(눈썹도 포함), 턱, 손등, 팔, 허벅지 심지어 성기 등을 태우고, 자체 제작한 쇠막대를 불에 달구어 수련생의 가슴, 허벅지 등을 지지기 등이 포함된다.


수련생 시연
 
* 몸 10여 곳에 불 고문을 당하여 깊은 상처가 생긴 광둥성의 탄융제씨(아래사진)
10여 곳에 불 고문을 당하여 생명이 위급했던 광둥성의 탄융제(覃永潔).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생존해 미국에 도착했다. 그는 휴스턴에서 13곳 상처에 3급 화상 진단을 받았다. 근육 깊숙히 파고든 상처는 보기에도 끔찍하다. 현재 그는 피부 이식 수술을 받은 상태.
  ▶ 가학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
 


음식물 강제 주입은 인도주의의 탈을 쓴 야만적인 고문 방법이다. 이 고문은 아주 위험하여 장쩌민이 1999년 7월부터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다시 사용하기 전까지 중국 감옥과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금지되어 있었다.


우선 금속 펜치나 쇠막대를 사용해서 입을 강제로 여는데, 이 과정에서 종종 입술과 입을 찢거나 이를 부러뜨린다. 그런 다음 튜브를 입에 쑤셔 넣어 목으로 내려가게 한다. 튜브는 대부분 더럽고 딱딱한 플라스틱이다. 튜브를 쑤셔 넣을 때 종종 식도를 손상시키던지, 또는 폐나 위장에 구멍을 냄으로써 심한 출혈과 감염을 일으킨다. 일단 튜브를 삽입한 후에는, 농축된 옥수수나 강도 높은 소금물 용액, 고춧가루 등을 펌프질한다. 중국 가오양(高陽) 강제 노동수용소에서는 심지어 배설물까지 주입하였다고 한다.
 
*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한 여성 사업가(아래사진)
왕위즈(王玉芝),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하여 난치병을 고쳤다. 그녀는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와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3번이나 불법적으로 감금되었다. 그녀는 헤이룽장성 완자(萬家) 강제 노동수용소에 감금 되어 있던 기간에 음식물 강제 주입 고문을 받았다. 그녀는 당시 잔혹한 고문으로 실명하다시피 되었고 거의 거의 사망직전까지 갔었다.
 
* 음식물 강제 주입으로 수백명의 수련생들이 사망하였다.
왕슈잉-헤이룽장성
양메이-허베이성
        가오셴민-광둥성
돤스충-충칭성
천아이중-허베이성
왕쉬즈, 강제로 소변과 대변을 주입.
현재 박해로 사망.
근거있는 통계에 따르면 현재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으로 사망한 수련생은 수백 명에 달한다. 그들은 헤이룽장성 샤오야리, 구슈셴, 류샤오링, 우바오왕, 류구이잉, 탄청창, 궈메이쑹, 쿵더이; 산시(陝西)성 바오지(寶鷄)시 쑨구이란; 지린성 한위주, 왕셴유, 한추이위안, 리수친, 장수란, 류훙; 산둥성 류쉬궈; 광둥성 가오셴민; 베이징시 메이위란; 산시(山西)성 자오둥메이, 리후이원; 상하이시 리웨이훙...등 수없이 많다.
  ▶ 사인상(死人床: 죽은사람의 침대)
 


「사인상 고문을 재연하고 있는 수련생」


‘대자판(大字板)’이라고도 하는「사인상(死人床)」은 단식으로 항의하는 수련생과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 수련생을 학대하는 고문 방법이다. 단식하는 수련생을 사인상에 묶어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교도관과 범죄자 앞잡이들이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한다. 많은 수련생들이 이러한 고문으로 사망했다.
 
*「사인상(死人床)」에 20일간 묶인 채 비인간적인 학대를 받았던 가네꼬 요꼬(아래사진)
일본 파룬궁 수련생 가네꼬 요꼬는 사인상에 20일간 묶여 있었다. 그녀는 수갑으로 손발을 꽉 죄인 탓에 손목이 손상되었고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했으며 또 강제로 소변줄을 꽂아놓아 화장실도 못가게 하였다. 그녀가 사인상에서 풀려났을 때 뒷등 전체에 욕창이 생겨 일어나지도 못했다. 게다가 잠을 못자게 하는 고문과 강제세뇌를 동시에 진행한 후 혈압이 높아져, 그녀의 두 눈은 실명하다시피 되었다. 그녀는 일본 국민들의 성원과 정부의 노력으로 현재 중국으로부터 구출된 상태이다.

* 가네꼬 요꼬 관련정보 http://www.sngo.net/rescue/rescue_main.asp
  ▶ 성 고문
 


여성에 대한 고문: 성적 모욕

파룬궁 女수련생에 대한 박해는 지극히 야만적이다. 경찰들은 전기봉으로 유방, 성기에 전기쇼크를 가했는데 심지어 질속에 전기봉을 넣고 쇼크를 가하기도 했다. 이 과정은 처녀 수련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경찰들은 여수련생들을 강간하고 윤간했으며 여성 파룬궁 수련생을 알몸으로 남자 감방에 밀어 넣기도 했다. 또 어떤 수련생은 베이징 길거리에서 강간당하기까지 했다.


젊은 여성이 받는 고문 중의 하나: 하지 압박
 
* 파룬궁 여수련생을 알몸으로 남자 감방에 밀어 넣기
2000년 6월, 선양 마싼자(馬三家) 강제 노동수용소에서는 18명의 파룬궁 여수련생들을 알몸으로 남자 감방에 밀어 넣었다.
 
* 경찰이 女석사생을 길거리에서 강간
경찰이 여 수련생을 강간, 윤간하는 장면
여 수련생을 알몸으로 매달아 놓고 때리는 장면
2003년 5월 13일 저녁, 충칭大 석사생 웨이싱옌(魏星艶, 여)은 사핑바구(區) 간수소의 한 경찰에 의해 사람들 앞에서 강간당했다.
 
* 불법 납치되어 강간당한 주샤양
건강한 32세의 주샤양. 고문, 강간으로 정신이상이 되기 전 모습 세뇌센터에서 석방된 후부터 주체할 수 없이 울부짖으며 통곡하는 주양
파룬궁 수련생 주샤(祝霞, 32)양은 쓰촨성 신진구 세뇌센터에 불법납치된 후 2004년 4월 2일 풀려났다. 그 후 그녀는 정신이상이 되었는데 가족들은 그녀의 말과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문과 반복적인 강간을 당한 것이 확실한다고 밝혔다.
 
* 베이징 길거리에서 경찰에게 강간당한 여수련생(아래사진)


베이징의 한 여수련생은 순찰하던 사복경찰에게 뭇매를 맞은 뒤 사람들 앞에서 강간당했다. 그 밖에도 경찰은 여수련생의 몸에 올라탄 후 있는 힘을 다해 플라스틱으로 된 경찰봉을 그녀의 질속에 밀어 넣었다. 사진은 여 수련생이 사건 발생 후 9일 만에 찍은 사진이다. (사진: 사건 발생 후 9일만에 찍은 여수련생의 모습)
  ▶ 압박침대
 



파룬궁 수련생을 사진처럼 묶은 후 침대 밑에 집어넣고 다시 무거운 물체 혹은 사람이 올라가 힘껏 짓누른다.
「압박침대」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수련생들이 세뇌센터,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받는 고문 방법이다. 이런 고문 방법은 극히 잔인하다. 경찰은 수련생의 발과 다리를 단단히 묶은 다음 두 팔을 뒤로 묶고 다시 목과 다리를 한데 묶어 숨쉬기조차 힘들게 만든다. 그런 다음 침대 밑에 밀어 놓고 침대위에 올라서서 수련생 척추가 부러질 정도로 힘껏 누른다. 이런 고문이 오래 지속되면 수련생들은 불구자가 된다.
 
* 천강씨, "압박침대 고문을 받고 척추가 부러질 뻔 했죠."
천강(陳剛), 칼스버그 양조회사 베이징지사 총무과 과장이었던 그는 중국에서 압박침대 고문을 받았다. 경찰은 천강과 같은 감방에 있는 범죄자 10여명에게 천강을 때리게 했는데 그의 얼굴이 구타로 인해 심하게 변형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시 질식할 정도로 꽁꽁 묶어 침대밑에 밀어 넣었으며 침대 위로 올라가 힘껏 그의 등을 내리 눌렀다. 천강은 당시 마치 척추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고 하였다. 그는 그 후 2주 동안 걸을 수 없었다. 자오밍(趙明), 웨이루탄, 돤빙천, 후창안, 추이샹쥔 등 수련생들은 모두 베이징 퇀허(團河)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압박침대 고문을 받았으며 루창쥔은 이 고문을 당한 뒤 전신이 마비되었다.

<-- 구출되어 미국에 온 천강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 물감옥
 



「물감옥」: 수련생을 발가 벗긴채 가슴 높이까지 오는 더러운 물 속에 집어 넣고 햇빛도 보지 못하게 한다. 물감옥에 얼마나 오랫동안 감금시키는지는 경찰 마음에 달렸다. 물감옥에 갇혔던 수련생들은 사망하거나 전신이 부패하게 된다.
 
* 딩옌 여사, 청더 감옥 물감옥에서 박해받아 사망(아래사진)
 
딩옌(丁延, 여, 32), 스자좡시 출신. 청더 감옥 물감옥에서 박해받아 사망했다.  
  ▶ 혹독한 구타
 



매달아 놓고 구타하는 고문을 수련생들이 재연하고 있다
 
* 대학 강사, 구타로 경추 3마디에 분쇄성 골절 입어


베이징 공상(工商)대학의 젊은 강사 자오신(趙昕)씨는 베이징 하이뎬 감옥에서 경추가 3개나 골절되도록 구타를 당했다. 그녀는 6개월간 극도의 고통을 당한 후 2000년 12월 11일 저녁에 사망했다.
 
* 정직하고 올바른 노신사 류위펑, 구타로 사망


류위펑(劉玉風, 남, 64)씨은 산둥성 원덩시의 은퇴한 당원었다. 그는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었으며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가 너그럽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파룬궁 수련 후 그는 건강을 되찾았다. 그는 원덩 감옥에서 극심한 고문으로 고통을 받고 그곳에서 고문사했다. 그는 파룬궁 수련 후 건강을 되찾았으나 원덩 감옥에서 극심한 고문 끝에 사망했다.

전문의에 의한 검시 결과 피하 출혈 자국이 오른쪽 눈꺼풀에서 발견되었으며, 그의 얼굴에는 찢어진 상처와 타박상이 있었다. 또한, 목구멍과 가슴, 다리에 전기충격에 의한 검푸른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의 피부는 벗겨졌고 피부밑 연부 조직이 손상되었다. 좌우 2~4 늑골 골절이 발견되었고 흉골 3분의 1이 부러졌다. 그의 온몸은 타박상과 부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 리중민씨, 2003년 3월 3일에 구타로 사망
리중민(남, 31)씨가 죽었을 때, 몇몇의 증인은 그의 몸에 수많은 상처를 보았는데 후두부는 핏자국으로 얼룩지고 대퇴 안쪽은 아주 큰 타박상을 입었다. 또한 그의 등에 많은 붉은 반점이 있었고 안와가 깊이 침몰되었다. 위의 사진은 그가 다롄 카이파구 하얼빈가 구치소에서 구타당한지 1주 후인 2001년 5월에 찍은 것이다. 그 당시 그의 상처는 조금 회복된 상태였다.
 
* 칭화(淸華)대 졸업생 고문받아 사망
완장(袁江, 29)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칭화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친절하고 재기발랄했다. 그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여러가지 질병으로 고생하였으며 1년에 한번씩 병가휴가를 받았다. 그러나 파룬궁을 수련하고 난 후 그의 육체, 정신적 건강은 극적으로 호전되었다. 그는 란주시 통신국과 제휴한 기술공학정보회사의 부국장이었다. 2001년 9월, 그는 간쑤성 둔황에서 체포된 후 두달간 극심한 고문을 당한 후 사망했다. 트럭에 가득한 고문도구가 모두 그에게 사용되었다. 당시 그의 온몸은 상처와 흉터로 뒤덮여 있었고 보기에도 끔직했다.
  ▶ 동상(凍傷)과 폭염노출
 


「강제 동상(凍傷)」: 영하 2, 30도에 달한는 혹한기, 경찰이나 간수는 파룬궁 수련생을 속옷만 입힌채 밖에 서있게 하고 파룬궁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폭염에 노출」: 뜨거운 여름, 경찰이 신념이 확고한 수련생들을 수갑을 채워 뜨거운 태양 아래 장시간 세워둔다. 수련생들은 종종 실신하고 피부화상을 입는다. 어떤 세뇌센터에서는 그들이 하는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더 악독한 방법을 사용했다. 예컨대 한여름에 그들은 작은 밀폐된 방에 수련생들을 가두고 히터를 장시간 최대로 틀곤 하였다. (좌측, 윗 사진)
 
* 59세 할머니를 맨발로 눈위를 걷게하여 사망시켜
경찰서 마당에 남겨진 천쯔슈 여사의 피로 물든 옷
천쯔슈(陳子秀, 59), 산둥성 웨이팡시 거주. 이 노인은 고무몽둥이와 전기봉, 가시달린 막대로 구타당했다. 그녀가 죽기 전 날에 몽둥이로 또 한번 맞아 고통을 받은 후에 거의 의식불명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경찰은 그녀가 죽던 날 강제로 그녀를 맨발채 눈길 위를 걷게 했다. 결국 그녀는 기절하여 쓰러진 후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 호랑이 의자
 



"호랑이 의자" 고문을 시연하는 수련생
 
* 류청쥔은 52일 동안 톄베이(鐵北) 감옥에서 호랑이 의자에 묶여있었다. 결국 고문으로 사망(아래사진)


류청쥔(劉成軍, 32) 고문으로 사망


그는 대중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기 위해 유선 방송망을 사용한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경찰은 류청쥔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그의 다리에 총을 두번 쏘아 심한 부상을 입혔다. 중국 뉴스 기관에서 방영된 그의 사진에서 보듯이 그는 온갖 종류의 고문을 받아 의자에 앉을 힘조차 없었다.
중국 경찰은 파룬궁 수련생을 「호랑이 의자」에 앉히고 보통 몇 개의 가죽 띠로 먼저 단단하게 묶는다. 동시에 발목 뒷부분을 차츰 높여 가죽 띠가 갈라 터질 때까지 시행한다. 장시간 호랑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정신을 잃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 약물주입으로 중추신경 파괴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파룬궁 수련생에게 그들은 자주 중추신경계를 파괴하는 약물을 강제 사용한다. 그리하여 수련생들은 정신이상이 오거나 사망하게 된다.
 
* 정체불명의 약물을 사용하여 사망한 수련생들
루훙펑(여, 37) 닝샤 링우시 한 초등학교의 부교장겸 교무주임이었으며 전 링우시지역의 우수교사였다. 현지 정신병원에서 약물주입으로 고통스럽게 사망.
장팡량(47) , 충칭시 룽창현 부현장이었던 그는 청렴한 관리였다. 퉁량 간수소에서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입받아 2002년 7월 9일에 사망.
쉬구이친(38) 산둥성 타이안시 파룬궁 수련생. 산둥성 제1여자 강제노동수용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되어 1년간 야만적인 박해를 받았다. 석방 2일전 신념을 포기하기를 거절하여 또다시 혹독한 구타를 당했으며 중추신경약물을 주입당했다. 집에 돌아온 후 정신이상이 왔으며 9일 후 사망
. 장더전(38) 산둥성 멍인현 파룬궁 수련생. 멍인현 610과 공안국의 불법적으로 연행되어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몸이 극히 허약한 상황에서 대량의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입받아 사망.
  ▶ 대나무 꼬챙이
 

 
「대다무 꼬챙이」: 긴 대나무 꼬챙이를 손톱밑에 박아 넣는다. 당하는 사람은 뼛속까지 통증이 스며든다.

* 허난성 융녠현 파룬궁 수련생 청펑샹(남)은 대나무꼬챙이 고문을 받았다.
* 허난성 류진팡(여)은 샹청시 정치보위과 경찰에게 불구가 되도록 얻어맞았지만 그들은 그 후 또다시 그녀의 손 발톱에
  대나무꼬챙이를 박아넣어 그녀를 기절시켰다.
* 쓰촨성 더양 파룬궁 수련생 장즈강(여)은 경찰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했으며 악도들은 대나무 꼬챙이를 그녀의 손가락에 박아넣고
  불붙은 담배꽁초를 속옷에 넣었다.
  ▶ 강제 낙태
 


수련생들의 강제낙태 시연
강제낙태: 임신중인 파룬궁 수련생을 강제노역시키기 위해 악경들은 강제적으로 낙태를 시킨다. 그들은 임신 몇 개월인지, 생명에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강제 낙태과정을 지켜보았던 남자 경찰들: 허난 멍저우시 악독한 경찰들의 만행사례. 수련생 겅쥐잉(耿菊英)을 강제노역시키기 위해 그들은 강제로 낙태 주사를 놓았다. 겅쥐잉이 아픔으로 고통스러워 할 때 남성 경찰들은 음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쁜 네가 낙태하는 것을 보겠다." 이렇게 그녀는 몇몇 경찰들의 눈앞에서 인공유산을 당했으며 그 후에 자오쭤(焦作) 세뇌센터에 보내졌다.
임신2개월에 감금되어 임신7개월에 강제낙태: 류쑤쥔(劉素軍, 37), 임신 2개월부터 감금되어 무거운 족쇄로 손과 발이 함께 묶여 있어 몸을 펴지 못하는 등 비인간적인 학대를 받았다. 그녀는 임신 7개월째 강제낙태를 당했다.
임신8개월에 강제로 수련생의 아기를 유도분만시켰으며 아기는 현재 생사불명: 옌타이 파룬궁 수련생 류추훙(劉秋紅, 39). 중처(中策)제약회사 직원. 임신 8개월인 상황에서 파출소 경찰에게 강제로 집에서 연행되었으며 강제적으로 유도분만을 당했다. 출산시 아기는 살아있었지만 경찰들이 데려간 후로 현재 행방불명이다. 류추훙은 유도분만 후 안정을 취하지도 못하고 펑황(鳳凰) 사무실 전향반에서 1개월간 감금되었다가 강제 강제 노동수용소에 보내졌다.
  ▶ 차에 매달고 달리기
 

  수련생 시연
차에 매달고 달리기: 악독한 경찰은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수련생들과 평화적인 항의를 하는 수련생들을 끈으로 경찰차 혹은 오토바이에 묶어 놓고 빠른 속도로 달린다. 수련생의 몸은 닳아서 뼈가 드러나고 온통 상처투성이여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사람을 산채로 태워죽이고 오토바이로 수련생을 끌고 달리다. - 마청시(麻城市) 바이궈진(白果鎭) 공안의 만행!

<-- 사망전 왕화쥔(王華君, 30)의 사진, 그녀는 2001년 4월, 바이궈진 정치법률위원회 서기 쉬스쳰(徐世前)에게 구타당해 진차오(金橋) 광장에 정신을 읽고 쓰러졌다. 공안은 쓰러진 그녀에게 석유를 붓고 태워죽였다. 그러고도 그것을 분신자살이라고 모함했다.

또한, 다른 두 명의 바이궈진 파룬궁 수련생을 오토바이 뒤에 매단 채 질주했다.
  ▶ 노예노동(奴工)
 



수련생 시연
「노예노동」: 지난 5년간 수만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불법적으로 감금되었고 높은 강도의 노동을 받았다. 그곳 노동환경은 극히 좋지 않았으며 생산품에는 일회용 젓가락, 수출완구 및 가발 등이 있다.
  ▶ 한 때 활기넘쳤던 파룬궁 수련생들의 생명, 그러나 그들은 진선인(眞, 善, 忍)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고문 받아야 했으며 심지어 죽어가야 했다.....
 
* 자무쓰 철도지국 간부였던 마쉐쥔은 감옥에서 학대받아 사경을 헤메고 있다.
파룬궁을 수련하고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진 마쉐진
박해 일년 후의 마쉐진
 
49세의 마쉐진은 헤이룽장성 자무쓰(佳木斯)시 철도지국 간부였다. 예전에 그는 재생불량성빈혈, B형 간염에 걸려 의사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94년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뒤로 병이 나았다. 마쉐진은 누구나 공인하는 좋은 사람이었으며 맡은 사업을 성실히 완수하고 청렴결백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4년 동안 2번이나 반년 감금되었으며 또 한번은 불법적으로 강제노역을 받았다. 1년반 뒤에 생명이 위급해서야 자무쓰 강제노동수용소로부터 풀려났다. 그 기간에 그는 여러 가지 고문, 전기봉, 전기의자, 구둣발로 허리와 가슴 구타, 의자로 발가락 짓누르기 등의 고문을 받았다....
 
* 헤이룽장성 파룬궁 수련생 우링샤 박해로 사망


우링샤와 아들의 행복한 한 때


우링샤(吳玲霞, 37)는 솽야산(雙鴨山) 간수소, 자무쓰시 시거무(西格木)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몸과 마음에 모두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나중에 간경화 복수로 인해 풀려났고 2002년 7월 사망했다.

우링샤는 사망전에 남편을 잃었기 때문에 현재 그녀의 아들은 고아가 되었다.

 
* 후난성 웨양 파룬궁 수련생 천싱타오, 하지가 마비되었고 끝내는 박해로 사망했다.


천싱타오의 천골이 썩어서 구멍이 난 모습

천싱타오, 1963년생, 후난성 웨양현 파룬궁 수련생. 2001년 1월에 불법적으로 후난 주저우 바이마룽 여자 강제노동수용소에 들어갔으며 그 기간에 온갖 잔혹하 박해를 받아 하지가 마비되었다. 2001년 5월 출옥 후 1년간 고통에서 헤메던 그녀는 억울함을 품은채 인상세상을 떠났다.
 
* 그 밖에 사례들..


파룬궁 탄압 전에 왕샤(王霞, 여, 32)의 건강했던 모습(左), 그녀는 계속된 고문과 구타로 체중이 24kg으로 감소했으며 현재 생명이 위급한 상태(右).


장중(張中, 남). 2002년 관영TV에 인권유린을 폭로하려고 노력하려고 시도하다가 체포되어 고문당한 이후 모습
근거있는 통계에 따르면 2004년 10월 5일까지 적어도 1060명이 박해받아 사망했고,

6000여명이 불법적으로 형을 언도받았으며,

10만이 넘는 사람이 불법적으로 강제 노동수용소에 들어갔고,

수천에 달하는 사람이 강제적으로 정신병원에서 중추신경 파괴약물의 고통을 받았다.

또한 많은 파룬궁 수련생의 각지 세뇌센터에 연행되어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으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법집행자’들의 혹독한 구타와 체벌, 경제적인 협박을 받았다.

또한 수억에 달하는, 파룬궁 수련생들의 가족, 친구와 동료들이 연루되거나 세뇌를 당했다.

장쩌민 집단의 잔혹한 탄압에 대한 엄밀한 봉쇄로 인하여 대량의 박해 사실은 아직 알지 못하며 고문이 너무 잔혹하여 그림과 시연으로도 재연해 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여기서 공개한 사진으로 박해의 정도, 규모를 추측하기 어려우며, 이것은 단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친구여,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

당신의 동정과 관심,

당신의 서명...

우리에게 있어서는 너무 소중합니다.

모든 조그마한 善의 힘은 모여서 어둠을 이겨낼 것입니다...고문을 제지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진(眞), 선(善), 인(忍)이 필요합니다.....

       
고문시연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사람들은 장쩌민 집단의 잔혹함에 놀라고 분노하였다.
또한 선량한 파룬궁 수련생들의 처지를 동정하며 눈물을 흘렸다.
 
장쩌민 집단의 잔혹한 박해를 반대하는 서명서에 사람들은 정중하게 자신의 이름을 기록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영문링크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 ··· 972.html
중문링크 http://pkg2.minghui.org/mh/2004/8/26/torture/Torture_exhi.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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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23:17 2008/08/09 23:17
Posted by huk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