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외에서 외국인들과 부딪히면서 그들을 경험해 보지 못하였다. 고작 해본 것이라고는 단기 여행. 잠깐 가서 외국인들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잘 알지도 못하는 그러한 경험만 해보았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때론 신문을 통해서 전해오는 외국의 모습은 나로하여금 항상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과연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우수성을 보이지만, 또 다른 이면에는 열등한 모습을 보이면서 항상 뒤쳐진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언제나 뉴스와 신문 등의 전달매체에는 선진국을 예로 들면이라는 인용구는 빠짐없이 등장하고, 항상 어느나라 어느나라 하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호기심으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한나라 사람들의 성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매우 흥미로웠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었고, 관련 서적 역시 많이 나와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과연 우리나라는 어떤 성향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좀더 정확한 사실을 알아가고 그 내용을 통해 앞으로의 세상을 보는데 더 나은 시각을 가지고 임하길 바라며 생각했다.
우리는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다. 체면은 어쩌면 예의와도 비슷한 개념이 될지도 모르겠다. 차이가 된다면, 예의는 상대방을 기분나쁘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체면은 나 스스로를 남보다 다소 우월하거나 최소한 열등해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선 이 둘이 거의 같은 것 같다. 어쨌든, 이러한 두가지 성향이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것 같다. 체면과 예의가 과연 옳고 그른가에 논의는 차치하고, 그러한 성향을 가진 우리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때론 매몰차게 내치는 냉정함을, 때론 얼굴도 모르고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배려하는 따뜻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향이 단순히 인간의 삶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정치와 경제의 영역까지 힘을 미치는 것 같다. 논의의 진행은 여러 갈래로 할 수 있지만, 나는 주로 경제적인 면으로 초점을 맞추고 싶다.
신문은 항상 비판의식을 지니고 산다. 그것이 신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신문을 읽는 사람들의 생각은 과연 어떠할까.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무비판적인 사고를 많이하는 것 같다. 무성히 퍼지는 소문 즉, 루머를 공공연하게 구전한다. 비록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이 있지만, 내 생각엔 루머는 때때로 정말 아닌 땐 굴뚝에도 새카만 연기를 내뿜는 것 같다. 교묘한 언어의 조작은 사람들의 감성을 이끌어 내고 삽시간에 전달시키는 기능을 내뿜어 내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에서 억압받았던 스트레스와 금기사항에 대한 도덕률 적용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그 탈출구를 찾는다. 때문에 더욱더 그러한 이야기들은 빨리 퍼지고, 커진다. 그러한 소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매카니즘을 통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나 역시 루머를 접하고 즐기고 전달하는 한 개체로서 활동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갖는다.
현실에선,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를 오간다. 체면이라는 것은 선진국으로 도약하길 바라고, 예의라는 것은 국민들에게 일정한 수준의 삶을 제공하는 것이다. 경제가 그렇듯이 어느 한쪽만 치우치면 부작용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과거 60년대의 경제개발계획을 통해서 절실히 느끼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복지에만 치우친다면, 독일이나 벨기에의 사람들 처럼 국가내의 대립이 상존하고 때론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불협화음의 여지를 남겨둔다. 기업연합이나 노조연합은 항상 싸운다. 지겹도록 싸운다. 서로 '경영환경이 어렵다',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를 외치며 임금 동결,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선진국의 반열을 올라가기 위해선 분명 누군가가 손해인 것 처럼 보이는 양보를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서 만큼은 예의보단 체면을 더 차리고 싶어한다.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향이라면 성향일까. 아니면 국가라면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일일까. 난 솔직히 이러한 대립각이라든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우는 이러한 일의 발생에 대해 특별한 찬반의견은 갖고 있지 않다. 다만, 현실에일어난 그 현상에 대해 사회적인 찬반의견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어짜피 현재의 위치에 있을 바에야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지 못할까하는 생각을 한다. 분명 어느 한쪽에서 양보한다는 것은 결국 손해로 귀결 될 것같다. 승패로서 체면을 차리기 때문이다. 체면을 차리는 순간 마음 한쪽엔 우월과 열등의 계급이 나뉘어 진다. 기업가가 이겼다면 노동자는 기업가에 비해 손해를 감수하고,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현상 자체에 대한 생각은 나 역시 이해한다. 그러나 눈을 조금 더 돌려서, 서로에 대한 이해 깊어진다면 정말로 지속가능한 발전가능한 보다 건설적인 협력이 상호 윈-윈하는 전략이 될 것은 알 것이다.
여기 게임이론이 있다. 만약 성공하는데 있어, 웃으며 하는 것과 화내며 하는 것이 있다. 실패역시 마찬가지이다. 성공과 실패의 확률이 반반이라고 따졌을때, 우리는 어떠한 방법이 더 좋은 방법일지 알 수 있다. 비록 성공의 확률이 10%라고 하더라고 상호 웃으면서 일을 한다면 실패도 성공을 향한 한 발걸음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성향은 컨트롤 할 수 없다. 다만, 서로 이해가 깊어진다면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다 쉽게 얻을 수 있고, 보다 화내지 않고 즐겁게 보낼 수 있다. 같은 일을 함에 있어 같은 결과를 내는데 왜 굳이 열을 내야만 할까? 길을 묻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인상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지나가는 것은 둘다 똑같은 결과지만 후자는 묻는 사람과 알려주는 사람 모두 기분이 나쁠 것이고, 전자는 둘 모두가 최소한 예의를 차리면서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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