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누군가는 바쁘게 돌아가는 자신의 사업을 위해
누군가는 인생의 경험을 쌓기 위한 여행을 위해
또, 누군가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누군가와의 만남을 위해
1미터 앞도 분간키 어려운 어둠속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다.
60도의 경사가 넘는 수풀이 우거진 산 속에서 무거운 장비를 차고 걷는다.
비를 맞으며 체온은 떨어지고,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막연함 속에서 기대감은 금세 사라진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이를 악물고 참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버텨낸다면 나 자신은 한단계 발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경험과 인내는 남들이 하지못한, 해보지 못한 특별한 나의 능력이 되리라는 나의 재산이 된다.
비록 그러한 힘든 과정을 버텨내는 것이 누군가에겐 쓸모 없는 시간이자 경험일지는 모르지만
그 경험이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미묘한 그런 감정을 경험하고 극복해본 자만이 진정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내게 주어진 환경은 머지 않아 변화한다. 긍정은 부정으로, 부정은 긍정으로.
그러나 현재에 불만만 가진채 투덜거린다면 바뀌는 것은 환경이 아닌 나 자신의 만족이다.
만족,
단어 하나에 숨겨진 뜻은 불만과 환경에 집착하지 말고, 적응과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가 아닐지.1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태어나고, 공부하고,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은퇴하고, 다시 돌아갑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일상이지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이런 과정들. 하지만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때론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큰 목적은 행복이겠지요. 그러한 행복을 실현하는데 있어 가장 큰 수단은 사랑과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 둘의 사소한 충돌이 생긴다면 어떠한 방법이 가장 좋은 해결이 될까요?
오래동안 믿어왔던, 사랑하는 사람이 늘 함께이길 원하는 그러한 직업이길 바랐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저의 선택은 남들이 생각하는 선망의 대상이 아닌 힘들고, 희생하는 정신이 요구되는 그러한 직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선택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은 결코 아닌 나 스스로에 의한 선택인 것이지만......
직업이란 것은 평생의 삶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것도 평생의 삶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물론, 직업도 사랑도 그 선택에 있어 많은 길이 있지만, 자주 바뀌는 직업도 사랑도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 주기엔 많이 모자라지 않을지요.
인연이란 것은 쉽게 생기기도 하지만 정말 어렵게 생기기도 합니다.
많은 헤어짐과 만남이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생각합니다. 이러한 만남이 다시 생기게 된 이유는 만남을 더욱더 다지는 계기가 되리라는...
늘 함께이길 원하는 사람에게, 늘 함께하지 못하는 시련을 안겨주신건 이 어려움을 이겨내면 미래에 수많은 어려움도 늘 함께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떨어짐이 평생토록 지속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젊을때의 고생은 점차 열매가 되어 돌아오고 미래엔 많은 수확물로 돌아올 겁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미래를 생각하기엔 사랑하는 이의 지금이 너무나 고단하네요.
책과 스트레스로 씨름을 하면서 가까이 있지 못한다는 생각에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고민이 많습니다. 힘들어 하는 사랑하는 사람과 일평생 갖게될 직업과의 딜레마..
현명한 답이란 것은 없습니다. 결국 스스로 변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달콤한 말들은 오히려 상황에 안달나 발버둥 치는 좋지 않은 상황이 올테니까요.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나 스스로의 고집을 꺾는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우리의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를 바라보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네요...
















소비와 재산의 관계
세계적인 경제의 위기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제대책이 도마에 올랐다. 이런저런의 대책을 내놓는 가운데 소위 말하는 부자들을 위하는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한편에선 반대의 여론이 한편에선 찬성의 여론이 들끓으면서 우리사회는 또 다시 부자와 서민의 대결 구도로 치닫게 되었다.
한편으론 소모적인 논쟁이다. 부자인가 서민인가는 엄마인가 아빠인가와 비슷한 이야기 같다. 정책이란 것이 둘을 모두 만족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지향하는 바는 모두를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2008년 말의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혼돈의 피해자다. 외국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국내 경제는 경제 불안이 생길때마다 수 많은 자금과 투자가 빠져나가는 실정이다. 하루에도 증권시장은 몇번이고 문을 열고 닫는 경우가 생기고, 환율의 문제도 하루아침에 몇백원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실정이다.
경제의 시장 원칙은, 초과 이윤은 생산자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인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로 인해 궁극엔 소비자도 생산자도 정상적인 이득을 얻는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론과는 달리 현실에선 변동성 즉, 리스크라는 외부요인이 존재한다.
수 많은 돈을 들여 투자를 하는 경우 앞날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한다. 리스크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안정적인 시장이라면 투자에 대한 어느정도의 이윤과 손해를 예상할 수 있지만, 불안정이 큰 시장에선 어느 쪽으로도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를 꺼리게 된다.
변동성이 큰 시장에선 하루만에도 큰 돈을 벌 수 있다. 개장하자마자 서킷 브레이커, 사이드 카가 발동되고, 하루에도 몇번씩 큰 폭의 등락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상황일 수록 지갑을 열기 보단 지갑을 닫게 된다.
안정을 좋아하는 성향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동산 등의 유동자산보단 부동자산을 선호한다. 위험성이 크면서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주식을 부동산보다 꺼리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때문에 지금의 정부의 정책은 사실 어떠한 노력에도 쉽게 부흥되지 않을 것이다.
기반을 다지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당장의 호불호는 매우 소모적인 논쟁이다. 정부의 눈부신 정책에도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면 경제의 악순환으로 연결되기 쉽다. 정부의 빚은 결국 우리의 지갑과도 연결되고 그렇게 되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물론 추가적인 논쟁이 상존하지만, 미국은 실리콘 밸리의 부흥으로 경제의 부흥을 이뤄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역시 기초 인프라의 투자에 의한 경제 회복이 일조했다. 우리나라 역시 지금 당장의 변동성을 걱정하는 것 보단, 변동성 이후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생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경제의 자국인의 규모가 낮은 국가라고 생각한다. 주요 경제중심지의 빌딩은 상당수가 외국인 소유이고, 주식시장의 배당금액을 비롯한 주요 주식회사의 비율 역시 외국인들의 비율이 높다. 경제의 근간인 수출입도 GDP의 약 65%를 차지한다. 경제 변수가 내부적 요인보다 외부적인 요인이 강력한, 내부의 기반도 아직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한국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의 다툼보다 합의를 통한 국민적 합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툼의 끝은 상처뿐인 승리자이다.
18세기 바이마르의 유명한 작가인 괴테와 실러.
하루는 어떤 사람이 괴테에게 이렇게 물었다.
"괴테와 실러중 누가 더 위대한 작가입니까?"
그러자 괴테는 이렇게 대답했다.
"최고인 1명보다 누가 최고인지 모르는 2명이 더 낫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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